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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물관 옆 공중전화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 안재융

오른쪽 볼우물에 새끼손가락을 짚고
빙긋이 웃고 있는
철기시대 전화기를 든 남자가
반가사유상의 자세로 속삭인다
전화 저쪽에서도 속삭이고 있을 듯
'No.7203-4631'유리 진열장 속
백 년도 안 된 유물이 관람자 없이
고요하게 시간 속으로 덜어가 앉는다
은행잎 화석으로 블라인드를 내린 유리창
두꺼운 인명 번호부가 쇠사슬에 묶여 있다
백 년도 살지 못할 사람들의 이름이
어떤 순서로 등재되어 긴 번호를 누르고 있는 걸까
여보세요, 남자가 자세를 바꿀 때
번호부 속 이름들이 무량으로 쏟아진다
눈썹으로 말하던 남자가 눈썹을 단정히 세우고
은빛 수화기를 공중에 걸어 놓은 전시실
청동기의 언어들이 찰칵 끊어진다
동전들이 엿들었던 이야기를 꿰고
'상평통보' '대동전' '조선통보'
동굴 같은 전화기 몸 속으로 떨어진다
슬픈 얼굴인 듯 미소 짓다가 일어서는
반가사유의 주름진 행보
전화기 저쪽도 슬픈 대답일 듯
구겨진 옷을 털며 오랜 기다림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
박불관은 결부좌를 하고 언제까지라도
Posted by shiny_star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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